1970년 01월 01일
<하드캔디>, <해변의 여인>, 안나 카레리나.
왠지 마음이 산란하여 복잡한 인간사 내지 심리를 꿰뚫을 듯한 게 보고 싶어서 선정한 몇 가지이지만..
<하드캔디>는 소아성애자-엄밀히는 소아성애를 표출한 범죄-에 관한 영화로, 섬세한 심리표현같은 걸 기대했으나 사실 그런 작품은 아니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노골적인 작품으로 은유라던가 상징, 또는 사건전개에 의한 의사표현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듯,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버리는 영화라고 해야하나. 유치하도록 솔직하면 유치하지 않아보일 수도 있다. 감독이 남자라는 것이 조금 의외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명 '헤일리'라는 (사실은 본명이 헤일리가 아닐수도, 칼바..뭐라는 도시출신이 아닐 수도, 아버지가 의대 교수가 아닐 수도, 도나양의 친구가 아닐 수도 있는, '네가 쳐다보고, 만지고, 상처주고, 망치고, 죽여버린 모든 소녀들'인-무려 이걸 대사로 친다! 대단하도록 노골적이다) 소녀가 범죄자로 추정되는 소아성애자에게 말한다.
'항상 그렇게 말하지, 소아성애자들 말이야!
"너무 섹시했어요, 그녀가 원했어요, 그녀들은 소녀이지만 성숙한 여성처럼 행동했어요"
애들 탓으로 하긴 쉽지, 안그래?
소녀들이 어떻게 여자를 모방하는지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여자가 하는 일을 할 준비가 됐다는 건 아냐!
넌 어른이잖아!!!
아이들이 시험삼아 꼬시는 듯이 말을 하면 넌 그걸 무시해야지, 부추겨서는 안돼!'
근데 이걸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생각났다. 음 그 둘은 날 혼란시키는데, 나는 소녀시대를 보고 극도의 불편함을 느끼지만, 원더걸스는 날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예를 들면 누군가는 소녀시대는 자신이 이상화하고 있는 소녀를 소녀답게 표현하기 때문에 좋은데 원더걸스는 너무 섹시하다는? 뭐 대충 그런 취지로 소녀시대를 사랑하던데
난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나 이거나 저거나 다 소녀의 섹시함을 팔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보임은 명백하다고 보이고; 소녀시대는 단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이상화되고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거고 뭐고 사실 뭐 다른 게 있겠냐마는 이미지로는) 더 불편했는데, 사실 그렇게 치자면 마치 원더걸스의 '자신이 선택한 듯한' '노골적인' 섹시함은 보는 사람에게 '그래, 그 여자애들은 자신이 뭘 하는지 알고 있어'라는 면죄부를 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치자면 소녀시대는 '그래, 난 소녀들, 그 순수한 느낌을 사랑하는거야'라는 면죄부? 뭘까?
어차피 연예계는 사업인 것이고 소녀 아이돌그룹은 계속 나올 거고, 이런 순진한 생각따위 해봤자 아무 소용 없고, 그냥 이미지와 취향의 문제일 뿐인데 괜한 뻘생각이 들어서....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
역시나 홍상수감독답게 꾸리꾸리한 맛은 언제나와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언제나와 같은 느낌의 언제나와 같은 영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은 퇴보가 아닐까요....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평판은 좋은 듯?
이젠 여자도 같이 깐다(?)는 것(?) 정도는 달랐을까..하기사 홍상수감독님께서 이제 여성캐릭터도 인간(?)으로 그려주신다는 것은 획기적이긴 하지만..아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언제나 홍상수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면 평생 입을 다물고 살고 싶고, 특히 술자리에서 말같은 건 하는 게 아닌 것 같을 뿐이고, 그런데 홍상수감독님의 영화중에서 술자리를 가장 좋아하고, 그런데 그 영화들은 대부분 술을 항상 마시고 있고...
내가 매우 좋아하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난 도무지 여자주인공은 이해가 안 갔다. 인터뷰하는 사람이 여기서 성현아는 오브제로 쓰였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현아의 인터뷰 내용이 뭐였냐면(홍상수, 오브제, 여성의 키워드로 찾으니 바로 이 인터뷰가 나온다, 옛날에 보고 어처구니없어했었는데 다시 봐도 마찬가지)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살아 있는 캐릭터이고 자기 주장도 강한 캐릭터였다. 사실적인 인물이다. 찍으면서도 불편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명히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이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태우 방과 유지태 방을 오가는 장면 말인데, 그건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거다. 선화가 정말로 두 사람 모두와 잤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다. 나는 자지 않았다고 믿었다.'
.......이게 그런 영화였던..가? 하아.
하여튼간 굳이 따지자면 '해변의 여인'에서의 고현정이라면 좀 살아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같이 까이잖아. 그건 그렇다치고 부끄럽지, 아 부끄러워......부,부끄러워............
하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술자리에서의 부끄러운 남자들을 보고 까기 위해서였는데, 여전히 깔만한 건 넘치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서도 나도 같이 스스로 까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아아 왜 난 나는 정당하다는 기분을 가질 수 없는걸까, 아 그 부끄러운 사람들은 홍상수감독님 영화를 무한반복해서 부끄러움을 학습해야하는데, 술자리에서 <그렇게까지는> 부끄럽지 않은 나만 반성하고 있구나, 하긴 그래서 내가 <그렇게까지> 부끄럽게 행동하지는 않는 거겠지, 하아.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차마 리뷰를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남들에게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은 나도 때때로, 특히 회식자리에서, 사물을 홍상수의 영화의 시각처럼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사실 그 내용은 전혀 다르더라도 내가 끝난 연애를 보는 시각 역시 동일하다.
아버지께선 이미 현실에서도 충분히 보는 걸 피곤하게 영화로까지 왜 보냐고 말씀하시지만.
<안나 카레리나> 옛날에 인상적으로 보았던 소설인데, 왜 이제는 훌륭하게도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 짧은 기간동안 난 새로운 인식을 얻었는데(이건 또 뭔 얘기야), 사람들이 '왜' 무엇인가를 말하는지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졸리니까 뭔가 비문들이 막).
아 졸리고 귀찮아져서 마구 말하자면, 왜 톨스토이가 그런 식으로 쓰는지, 이 에피소드는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인물 등장 앞에 살짝 살짝 덧붙이는 신랄한 듯하고 객관적인 듯한 인물 설명이 거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를 왜들 싫어하는지 알겠어..
하여튼간에 요즘은 사람들이 이 말을 왜 하는지 그 이유에 예민해지면서 불편해죽겠다 정말, 앞의 술자리에서의 이야기인데, 술자리에서 자기PR하는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시니컬한 건지. 아니 술자리도 아닌데 윗사람있을 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술마시고 하는 게 나은 것인가, 하여튼간에 계산된, 어설픈 연출들을 보는 건 좀 거북스럽다.
# by | 1970/01/01 09:00 | 책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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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는 그 미묘함 때문에 호오가 심각하게 갈리는 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적나라함을 불편하게 즐기는 편이구요.